한국임상시험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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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수기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은 임상시험 사랑 콘텐츠 공모전을 개최하여 임상시험의 참된 의의와 가치를 나누고 있습니다.
게재된 작품들은 임상시험 사랑 콘텐츠 공모전의 수상작들로, 소개된 사례나 경험이 전체 임상시험의 결과를 대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는 개발 중인 신약뿐 아니라 대조군에 해당하는 표준치료제 또는 위약만을 처방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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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이 가져다 준 제 2의 인생

제1회 임상시험 참여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질환명 : 유방암 ㅣ 임상시험센터명 : 고려대학교안암병원 ㅣ 담당 연구자명 : 박경화
임상시험 참여환자 : 안기순님

내가 처음 고대안암병원을 찾은 것은 2009년 꽃들이 만발한 4월 어느날이었습니다. 정말 화창한 날이었지요

동네병원에서 처음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소견서를 들고 고대유방암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제발 유방암이 아니기를.. 정말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마냥 풀이 죽어 의사 앞에 앉았습니다.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 유방암 3기라고 했고, 암이 생각보다 많이 진행돼 수술 전 항암제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 하며, 표적치료제를 함께 쓰면 좋은 경우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보험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나는 혼절 할뻔하면서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우리애들은?? 치료비는?? 항암제 한번 맞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데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더 빠져나가는 듯 했습니다. 교수님은 그 순간에도 설명을 하시는데, 나는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교수님 입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입이 어항 속 붕어처럼 뻐금거리는 것 같이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몸은 점점 옆으로 쓰러질 듯 기울어졌지만 교수님이 요즘은 항암치료를 무료로 받는 기회도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 암이 임상시험 항암제와 잘 맞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

교수님은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이라는 항암제를 투여받을 수 있으며, 이 경우 암세포의 특성이 약과 맞아야 가능하고, 모든 환자가 다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에 나는 다시금 실망 속에 간절히,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내 암이 약과 잘 맞게 해달라고... 나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임상시험에 선정 됐다는 말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으로 임상시험에 대해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임상간호사와 상담을 하라며 간호사 한분을 소개해주셨고, 그분을 따라 빈사무실로 가서 절차에 대해 설명을 듣는데, 그 좋던 생각은 어디로 사라지고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좋은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옆에서 걱정을 하고 앉아있는 남편을 가재미눈으로 째려봤습니다. 임상시험에 참여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보니 왜 그렇게 화창한지.. 나는 이렇게 아픈데 그런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보이고 옆에서 야쿠르트를 파는 아줌마도,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강아지까지 부러워보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다 건강하겠지 하는 생각에....

“쉽지만은 않았던 항암 치료과정”

그 뒤로 나는 유전자 검사에 합격해 ***을 포함한 항암제로 3주마다 치료를 받았습니다. 항암제를 맞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너무 배가 고파 밥을 한 그 릇씩 싹싹 비웠고 그러고 나면 온몸이 나른해지며 기운이 빠지고 졸음이 쏟아져 방에 들어가 3~4시간정도 아주 달게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면 바로 화장실로 직행, 화장실에 가면 먹었던 음식이 설사로 쫙쫙.. 그러면 다시 배가고파 밥을 먹고 또 잠이 들기 일쑤였습니다. 항암제를 맞고 오는 날이면 이런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수술 전 8번의 항암치료 후 나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추가로 10번의 ***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상하게도 항암제 18번을 맞았으니 살이 빠질 것 같았는데 체중은 늘어갔습니다.

교수님께 갔더니 살이 너무 찌면 안 되니 운동을 해서 살을 빼라는 주의도 들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항암제를 맞으면서 성격이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몸이 아프고 지쳐있으니까 고맙게도 시어머니, 남편, 아이들이 방에만 누워있으라며 집안일을 도맡아 해줬고, 나는 깨어있을 때는 TV시청을 많이 했는데 뉴스는 너무 무겁고 어두워서 보지 못했고, 개그맨들이 나오는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고 또 웃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개그맨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분위기가 너무 무거우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참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어린애처럼 재롱을 많이 부리기도 합니다. 치료 전과 변한 또 한 가지는 옷은 절대로 검은색 옷이 싫어졌다는 점입니다. 검정색 옷을 입으면 심장을 짓눌러 내 몸이 땅속으로 끌려가는듯해 입지 못하고, 대신 밝은색 특히 주홍색의 옷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주홍색 옷을 입으면 기분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아 얼마나 좋은지... 그래서 나이가 육십인데도 주홍색을 많이 입는 편입니다.

“만약 내가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치료비, 생활비, 수술비 등을 감당하느라 늘 우울하고 짜증스러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끼칩니다. 그 많은 돈을 구하기 위해 저의 아이들은 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직업전선에 뛰어 들었을테고, 남편은 남편대로 지쳐 술, 담배로 세월을 보냈겠지요. 그때 임상시험에 참여한 것이 소중한 우리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막아줬습니다. 뿐만 아니라, 임상시험에 참여함으로써 시중에는 없는 약으로 내가 제일 먼저 치료를 받아 먼저 암이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이라고 진단받았을 때, 건강하게 일상 생활하는 사람들, 아니 강아지까지 부러워했던 나에게 암이 낫고 일상생활로 한걸음 빨리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건강을 되찾고 일을하며 희망을 전하는 삶...”

돌이켜 보면 내가 임상시험에 참여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들은 아무 걱정 없이 군대 다녀와 대학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 작게나마 엄마용돈도 주며 잘 지내고 있고, 딸도 대학졸업하고 자기가 다니던 대학에 조교로 취직해서 맡은 일에 충실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열심히 항암치료를 받고 지금은 야쿠르트대리점에 취업해 용돈을 벌며 고객들과 서로 사는 얘기도 나누고 지내니 여간 좋을 수가 없습니다. 왜 하필 야쿠르트냐 하면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고 전동 케링카를 끌며 다리운동을 하고 머리로는 계산을 해야 하니 두뇌회전을 해서 좋고 가만히 앉아서 햇볕을 쬐니 뼈가 튼튼해져서 좋고 제품을 팔아야하니 얼마간에 긴장이 내 자신을 용기 있게 만들어줘서 야쿠르트를 택했습니다. 또, 일을 통해 만나는 고객들이 어쩌다 같은 유방암 환자일 경우, 격려도 해 주고 임상시험에 참여해서 좋았던 점들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다른 많은 분들도 이런 좋은 기회를 통해 건강을 되찾고 저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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