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임상시험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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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수기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은 임상시험 사랑 콘텐츠 공모전을 개최하여 임상시험의 참된 의의와 가치를 나누고 있습니다.
게재된 작품들은 임상시험 사랑 콘텐츠 공모전의 수상작들로, 소개된 사례나 경험이 전체 임상시험의 결과를 대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는 개발 중인 신약뿐 아니라 대조군에 해당하는 표준치료제 또는 위약만을 처방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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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덕에 참여한 임상시험

2019 임상시험 콘텐츠 공모전
우수상 김화순

100세 시대, 60살 중반에 다가온 치매의 전조

100세 시대라고 떠드는 요즘 이제 겨우 60살 중반인데 때론 어제 일도 생각이 나지 않고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 거기에 더해 대화 중이나 글을 쓰다가 꼭 사용해야 할 어휘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금방 떠오르지 않고 입에서만 맴돌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내 증상을 얘기해봤지만 자신들도 항상 그렇다며 이제 그럴 때가 되었으니 감수해야 한다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제 겨우 66세인데 벌써 치매 증상이 온단 말인가? 치매는 일찍 인지만 하면 얼마든지 늦출 수가 있다고 하던데…….’

혼자서 고민을 하다가 시집간 딸에게 전화로 내 증상을 이야기하며 푸념을 늘어놓자니 서러운 생각에 눈물이 났다.

“엄마, 그러면 아빠한테 얘기해 함께 가서 치매인지검사를 한 번 받아 봐요. 문재인케어로 인해 돈도 별로 들지 않아요.”

나는 딸의 말을 듣고 남편과 함께 경희대학병원 치매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1시간가량 의사와 1:1로 상담을 하고 인지력, 기억력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 의사한테 검사 결과를 들었다.

“경도인지장애로 치매의 시작입니다.”

의사의 말을 결국 치매라는 말이 아니던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앞에 뿌연 안개가 껴있는 것 같았다. 지금 친정엄마는 여든이 넘었는데도 아직 멀쩡한데 나는 왜 이런가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우리 할머니는 나이 일흔이 되자 치매에 걸려 고생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미루어보아 나는 할머니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가족력이 분명했다. 한참동안 멍하고 있는데 의사가 말했다.

“한 번 노인성치매 임상시험에 참여해 보시지요. 중증 알츠하이머로 참여하겠다는 환자는 많이 있는데 경증인 인지장애 환자가 부족해서…….”

의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나 대신 옆에서 남편이 의사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는 심각한 얼굴로 마주앉았다.

“한 번 임상시험에 참여해 보라고……. 병은 초기에 잡아야지 오래 두면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도 못 막는다고…….”

남편의 말에 내가 버럭 화를 냈다.

“아니, 그러면 나보고 일본군 731부대의 마루타가 되란 말이에요?”

“왜 그리 나쁘게만 생각해? 나 한 사람의 봉사와 희생으로 여러 사람을 질병으로부터 구한다면 이 얼마나 헌신적 활동이오. 그러니 대승적으로 생각하라고. 더구나 요즘의 임상시험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

남편의 설득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내 머리 속에 각인된 임상시험은 그게 아니었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기대는 것이 바로 임상시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 생각대로라면 임상시험에 참여했던 사람은 다 마루타였고,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네?”

남편의 권유, 가래로 막을 치매를 호미로 막기 위해 임상시험 참여를 결심하다

내 푸념을 듣다 못한 남편은 화를 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식탁에 앉아 종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 말처럼 가래로 막을 거 일찍 서둘러 호미로 막아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거기다 더해 의학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자는 마음도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의사와 마주앉았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시간에 맞게 드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오셔서 인지검사를 하시면 됩니다. 3개월 동안 실시하는데 왕복 교통비와 약간의 수고비를 드릴 겁니다.”

이렇게 나의 임상시험은 시작되었지만 찝찝한 마음은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특히 1주일에 한번 인지검사를 할 때면 마루타라는 생각과 함께 어떤 때는 인간에 의해 춤추는 로봇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중치매환자와 함께 검사를 받는데 그 분이 그리 안쓰럽게 보일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아들이 모시고 왔는데도 아들을 아저씨라고 불렀다. 더구나 어머니를 모시고 온 아들이 치매 부모에게 하는 지청구를 듣자니 문득 우리 아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동시에 치매 부모를 모시는 아들이 얼마나 속이 터질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내가 저 중증환자처럼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 아들도 저 사람처럼 나를 구박할 테지.’

한참동안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 동안 괜히 임상시험에 참여했다는 생각이 싹 달아났다. 나는 초기에 임상시험에 참여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약을 먹는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또 지켜야 할 규정이 너무 많고 일주일에 한 번 인지검사를 하다 보니 꼭 내가 다른 사람에 조종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래서 딸과 남편에게 불만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래도 기왕 임상시험에 참여했으니 성심성의껏 해봐요. 신약개발을 위해 당신이 쏟은 열정으로 효과를 검증할 수 있고 부작용까지 찾아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에요. 당신의 열정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남편의 계속된 응원과 개선된 인식으로 임상시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나

남편의 응원은 연일 계속됐다. 생각해보니 남편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 한 사람의 태만으로 임상시험의 전체를 오류로 만들 수는 없었다. 또 새로운 약을 개발해 놓고 임상시험의 실패로 상용화 할 수 없게 된다면 모든 것이 내 책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치도 허투루 행동할 수 없었다. 임상시험이라면 나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흔히 실험용 마루타로 이용당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평생을 살면서 절대 치매는 걸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노인들이 치매로부터 자유로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어떻게든 임상시험에 열심히 협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주는 약도 시간에 맞추어 잘 먹고 1주일동안 내 인지활동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잘 적어 두었다가 다음에 의사선생님을 만날 때 보고를 드렸다.

“이렇듯 열심히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사는 언제나 나의 열정적 활동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임상시험은 한마디로 새로운 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실험하는 단계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처럼 병원에서 임상시험에 참여하며 듣고 배운 것이 있다. 대개 어떤 불치의 환자들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을 한줄기 빛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나, 혹은 돈이 없어 치료를 하지 못하는 환자들은 임상시험에 참여해 질병 완치의 기회를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망각증상의 호전으로 신약개발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자부심이 더해져

나도 비록 경도인지장애라는 초기 치매증상이지만 임상시험에 참여했다는데 보람을 느꼈다. 또 신약개발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결코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치매증상이 여기서 더 진행이 안 되고 완치된다면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일찍 서둔 것을 나 스스로에 고마워해야 할 것 같았다.

3달의 임상시험 참여 후 그렇게 자주 잊던 망각증상이 호전되는가 하면 이야기 도중 꼭 사용하고 싶은 어휘도 금방금방 생각났다.

내 말에 남편이 한마디를 했다.

“당신이 치매에 걸리게 되면 나를 아저씨라 부를 것 같고, 더 심하면 내가 당신의 대소변을 다 받아내야 할까 봐 얼마나 놀랐다고…….”

결국 남편은 자신에 닥칠 재앙을 털고자 나를 임상시험에 밀어 넣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치매에 대해 일찍 눈뜨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내가 임상시험에 참여해 신약을 개발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그게 보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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